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러토가 전투 (문단 편집) === 배미스 고지 전투 === 10월 7일, 버고인은 전쟁 협의회를 소집해 앞으로 어찌할 지를 논의했다. 프레이저 준장과 리데젤 대령은 아군이 오랫동안 보급을 받지 못해 기아에 시달려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병력이 6천 명도 채 되지 않는 반면 적의 숫자는 갈수록 불어나고 있으니 퇴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버고인은 클린턴이 아군을 구하고자 오고 있으니 안된다며 거부하고 미국 좌익에 대한 정찰을 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프레이저는 1,500명의 경보병대를 이끌고 프리먼 농장에서 배미스 고지로 올라가 바버 휘트필드로 진군했다가 모건의 라이플 부대 및 에녹 푸어 장군이 이끄는 대륙군 여단과 마주쳤다. 모건은 즉시 영국군 우익에 배치된 경보병대를 공격했고, 푸어 장군은 영국군 좌익 척탄병들을 공격했다. [[파일:Arnold-wounded.jpg]] 부상당한 채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아놀드. 이때 숙소에 감금되어 있던 베네딕트 아놀드는 총격 소리를 듣고 뛰쳐나와 병사들을 친히 지휘했다. 반면 호레이쇼 게이츠는 전투 내내 숙소에 남아 있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던 중, 프레이저 장군이 병사들을 수습하려던 중 가슴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이때 프레이저 준장을 저격한 인물은 대륙군 소속 티모시 달튼 상병으로 저격당시 그는 프레이저 준장으로부터 274m나 떨어져 있었다.] 지휘관을 잃은 영국군은 서둘러 퇴각했고, 아놀드는 앞장서서 적을 추격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 부관이 어디 다친 곳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다리에 맞았다. 차라리 심장에 맞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전투가 끝난 뒤, 버고인은 병사들을 수습한 후 어둠을 틈타 철수시켜 10월 8일 아침에 요새화된 위치로 돌아왔다. 그 후 대륙군은 15,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해 영국군 진영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제 버고인에게 남은 선택은 단 두 가지, 즉 이대로 굶어죽거나 항복하는 것 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